시사 칼람(Kalam) 16호 이슬람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미국 미디어 속 이슬람 (이수정)

관리자
202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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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람(Kalam) 16호. 2022년 1월 2일 일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이슬람의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미국 미디어 속 이슬람


이수정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



2001년 9/11 테러 발생 후, 이슬람과 무슬림의 이미지는 ‘테러리스트’ 속에 갇혀버렸다. 다양한 언론 기사와 미디어 매체는 이슬람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보도하고, 이를 소재로 영상을 만들었다. 실제 이슬람과 무슬림이 어떤 종교이고 어떤 사람인지 사실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보고 싶고, 믿는 모습을 제공한 것이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미국 드라마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NCIS, 홈랜드와 같이 높은 인기를 얻은 드라마 속 이슬람과 무슬림의 이미지는 말 그대로 테러리스트라는 틀 안에 꽁꽁 갇혔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 같던 드라마 속 이슬람과 무슬림 이미지에도 작고 느리지만 변화가 찾아왔다. 피도, 눈물도 없이 미국을 공격하는 악역으로 등장하던 무슬림 모습과 다르게, 2018년 CBS에서 방영한 드라마 FBI는 조금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목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이 드라마는 미국의 FBI 요원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명 제작자인 울프(Dick Wolf)의 기존 드라마 제작 방향성을 충실하게 반영하여, 말 그대로 FBI라는 직업에 기반한 서사를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이와 동시에, 미국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를 절대 가볍지 않게, 날카롭게 풍자한다.

여러 등장인물 중 단연 눈길을 끄는 인물은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남녀다. 남자 요원은 지단(O.A., Omar Adam Zidan)으로, 극 중 이집트 출신 무슬림 이민 2세다. 미국 드라마에서 선한 주인공 역할로 무슬림을 설정한 것은 FBI시리즈가 역사상 최초이다.


지단은 단순히 무슬림이라는 배경만 가진 인물이 아니다. 지단은 이슬람을 믿는 독실한 신자임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자, 특수 부대원으로 이라크 참전 용사다. 특히 애국심 깊은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훤칠한 외모에 키도 크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해내며, 여러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능력남으로 등장한다. 누가 봐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멋있는 남성을 이슬람을 믿는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드라마는 여러 에피소드로 이주 무슬림 2세대가 경험할 수밖에 없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미국인이라는 정체성 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다. 이슬람을 믿고 있을 뿐 평범한 시민으로 직업을 갖고 생활하는 삶을 묘사하면서, 무슬림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와 동시에, 극 중 인물은 단지 무슬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별을 경험하거나, 근거 없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또, 잘못된 이슬람을 맹신하면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집단의 모습에 힘들어하는 지단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전의 드라마가 묘사한 무슬림과 달리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 속에 충분히 있을 법한 매력적인 인물로 표현하였다.

 

물론 드라마 FBI에도 한계점은 있다. 무슬림 여성의 이미지가 그동안 미디어에 나타난 이미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진취적이고 사회에서 엘리트 계층으로 활동하는 무슬림 여성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고, 이슬람이라는 가치관도 크게 드러내지 않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히잡을 쓴 여성의 경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빠져 자신을 모두 내던지는, ISIS의 등장 당시 문제가 되었던 지하드 신부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이처럼 여전히 존재하는 미디어 속 고정 이미지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갈이라도 하듯, 2020년 1월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에서 새로운 무슬림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였다. FOX 채널에서 방영하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다룬 9·1·1 론스타(Lone Star) 속 인물이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극 중 배경인 텍사스 126소방대 소방대원이자 구급대원 중 한 명으로 마르와니(Marjan Marwani)라는 무슬림 여성이 등장한다.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구하고, 몸을 아끼지 않으며, 위험한 현장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디어와 인터넷을 활용해 자신을 홍보하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다. 다양한 히잡 착용 스타일을 보여주고, 여성들만 출입할 수 있는 모스크와 관련한 이야기를 그리는 등,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무슬림 여성의 또 다른 모습을 대변한다.


해당 드라마 제작진은 극 중 구성원과 배경 자체를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꼬집는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동성애자, 성전환자, 조건부 영주권자(DREAM-er) 등이 126소방대를 구성하는데, 이들 모두 미국 사회에서 차별의 대상인 사람들이다. 126소방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소방대원의 종교, 인종, 성 정체성을 두고 차별적인 언사를 지속하는 모습을 역설적으로 그리며, 미국 사회의 문제점과 갈등을 풍자한 에피소드도 있다. 또한 소방대의 활동 무대가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남부 텍사스라는 점 역시 이 드라마 시리즈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순히 오락적 요소에 한정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의도나 목적과 관계없이, 미디어에서 무슬림 여성을 다른 시각에서 다루기 시작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다. 무슬림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렸다는 점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한 번쯤 시청할 만하다.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처럼, 미디어가 이미지를 만든 것이냐,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미디어가 사용한 것이냐는 명쾌하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미디어에 나타나는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이 변한 것은 분명하다. 국가 안보를 위협하고 대량 살상 테러를 일으키는 범죄자에서 오히려 테러범을 잡고 사회를 수호하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무슬림이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게 뿔이 달리고, 눈이 세 개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한두 편의 드라마 속 인물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다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미래 국제 정세나 사회 분위기에 따라 더 안 좋은 방향으로 또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보통 사람 무슬림 이미지와 이야기를 즐기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지금인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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