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13호 미국의 중동 떠나기 성공할 수 있을까? (성일광)

관리자
2021-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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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람(Kalam) 13호. 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미국의 중동 떠나기 성공할 수 있을까?


성일광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라크가 불타오른다. 지난 10월 총선에서 참패한 친이란 세력이 공포와 무력으로 이라크를 내전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있다. 절정은 7일 무스타파 알카디미(Mustafa al-Khadimi) 총리 암살 시도다. 무장 드론이 그린존 내 총리 관저를 공격했으나 카디미(Kadhimi) 총리는 기적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아직 쿼드콥터(회전 날개가 네 개 달린) 무장 드론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단체는 없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암살 시도의 배후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를 가리키고 있다. 올해부터 미군 부대를 겨냥한 여러 차례의 드론 공격이 있었고, 미군 당국은 이를 친이란 시아파의 소행으로 파악하고 있다. 총리 암살 시도의 유력한 배후 조직은 아사이브 아흘 알하크(AAH)와 카타이브 헤즈볼라(KH)이다. AAH의 지도자 알카잘리(Qais al-Khazali)는 지난 5일 카디미에게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친이란 세력이 카디미를 노린 이유는 뭘까? 이란은 카디미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 전 언론인이며 정보국장을 역임한 카디미는 이란과 충돌을 피하며 조용한 행보로 이란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노련함을 보여왔다. 반이란 반외세 성향의 이라크 시아파 정치인 앗사드르(Muqtada al-Sadr) 역시 카디미가 총리직에 남길 원하는 만큼, 카디미가 새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친이란 시아파는 곧 출범하는 새 이라크 정부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두고자 협박, 뇌물, 무력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공작을 펴고 있다. 또한 조직적인 반정부 거리 시위로 이라크 정치인들을 압박해 친이란 정부를 구성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현 이라크 정세의 향배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태도이지만, 정작 미국은 ‘슬리피 바이든(Sleepy Biden)’이란 별명처럼 아무런 대응책을 내보이지 않는다. 수단의 쿠데타를 규탄하며 경제제재를 가한 것처럼 미국이 이라크에서 내란을 획책하는 이란에 동일한 제재를 할 수 있을까? 이란은 이미 그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미국이 오는 29일 천신만고 끝에 재개되는 이란과 핵협상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현재 최다 73석을 얻은 반이란 반외세 성향의 시아파 지도자 앗사드르가 이끄는 앗사이룬(al-Sairun) 정파는 순니 정치인 알할부시(Muhammmad al-Halbousi), 칸자르(Khamis Khanjar) 및 쿠르드 세력과 연대해 새 정부를 구성하려고 한다. 이란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만약 반외세 반이란 정부가 구성되면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 세력은 사실상 영향력을 잃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란은 역내 가장 중요한 요충지 이라크를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란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돕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지원하기 위해서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육로 이라크가 꼭 필요다. 이라크는 지중해로 서진할 수 있는 주요 통로이다. 만약 미국과 유럽이 혼돈의 이라크 정국을 바로 잡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란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이라크 국경 인근 안타프(al-Tanf) 기지에 소수 정예군을 주둔시켜 시아파 민병대의 활동을 막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란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다. 중동을 떠나려는 미국을 이란이 놓아주지 않는 형국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이라크 미군기지를 겨냥한 시아파 민병대의 공격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6월 말까지 시아파 민병대는 이라크 정부군과 미군 기지를 24차례나 공격하였지만, 미국의 보복 대응은 3차례에 그쳤다. 바이든 행정부의 군사력 사용은 국내 여론 악화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가 심하다. 중동지역에서 또 다른 전쟁을 원치 않는 미국 내 여론이 이라크에서 미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런데 이미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책 없이 철수하면서 혼돈을 불러일으켰고, 이를 비판하는 국내 여론도 만만치 않다. 시아파 민병대의 도발을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신호를 이란에 보내지 못한다면, 민병대의 공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라크 정국 혼란이 가라앉지 않고 이란과 핵협상도 미국의 의도대로 타결되지 않는다면 과연 미국의 중동 떠나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이란 문제 개입을 종용할 것이다. 이라크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의 영향력을 축소하지 못하면 이란은 시아파 민병대를 이용해 이라크는 물론 시리아 내 미군 기지까지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다른 지역도 이란의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에 발생한 베이루트 항구 대폭발 사건 수사는 수사를 반대하는 헤즈볼라 주도 시위대와 찬성하는 기독교 민병대 간 무력 충돌로 무산된 듯하다. 수사의 초점은 헤즈볼라가 폭발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예멘에서 후시반군은 천연가스가 매장된 마리브(Marib) 지역을 차지하고 마리브(Marib)시(市)까지 위협하고 있다. 샤브와(Shabwa) 유전지대도 차지했고, 사우디아라비아군은 이 지역에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중동 떠나기’란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미국이 중동을 떠나는 것은 자유지만 중동은 미국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한 이스라엘 관리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이 잠시 중동을 떠날 수는 있어도 다시 돌아와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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