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10호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를 가져올까’라는 10년 전 물음 (한새롬)

관리자
2021-09-27
조회수 1028

시사 칼람(Kalam) 10호. 2021년 9월 27일 월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아랍의 봄이 민주주의를 가져올까’라는 10년 전 물음


한새롬 영국 애버딘대 국제개발센터 연구위원


아프가니스탄에 떠들썩하게 다시 등장한 탈레반때문에 메나지역이 국제사회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미국이 주도해온 국가 건설 실패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의 화려한 부활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향후 아프가니스탄의 변화와 관련된 물음은 미래형이고, 이에 대한 대답은 역내 주요 행위자 뿐 아니라 앞으로 글로벌 시민과 국제사회가 보여줄 관심 및 행동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이른바 ‘아랍의 봄(Arab Spring)’으로 불렸던 민중운동 역시 지금과 비슷한 미래형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바 있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한 민중운동이 가져올 변화는 무엇일까? 과연 앞으로 이 지역에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2010년 12월 두 청년의 분신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가 튀니지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곧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바레인과 같은 역내 다양한 권위주의 국가로 순식간에 번져나갔다. 길거리와 광장에서 울려 퍼진 구호 ‘일, 자유, 국민의 존엄’과 ‘시민들은 정권 타도를 원한다’는 국제사회가 이전까지 갖고있던 메나지역의 이미지를 깨트렸다. 강한 리더와 권위주의에 순응적인 문화를 가졌기에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는 ‘아랍예외주의(Arab exceptionalism)’의 거울이 깨지자 억압과 가난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풀뿌리 권력과 영향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식민주의의 잔재, 부족주의, 종파주의, 이슬람-세속 세력간의 갈등 외에도 역내외 복잡한 이해관계와 간섭때문에 2011년 아랍봉기를 경험한 나라들은 하나 둘씩 권위주의로 다시 회귀했다.


유일하게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고 평가받는 나라는 바로 튀니지다. 독립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2011년 10월 제헌의회를 선출하였고, 점진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수립하였다. 절차적 민주주의 뿐 아니라 시민의 정치적 권리와 언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튀니지는 비교적 높은 수준의 질적 변화를 이뤘다.


인구가 1,200만이 채 안되는 튀니지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1956년부터 2011년까지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부르기바(Habib Bourguiba)와 벤 알리(Zine El Abidine Ben Ali)라는 두 통치자의 장기 집권을 경험한 바 있다. 벤 알리 시대에 들어서 심화된 경찰 통치, 연안지역과 내륙지역간 불평등 심화, 청년 실업 문제가 2010년과 2011년에 발생한 민중운동의 핵심 원인이었다. 사실 대규모 시위의 이유만 놓고 보면 아랍봉기를 겪은 다른 나라들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튀니지에서만 유일하게 민주화가 진행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학자들은 온건한 이슬람 세력, 국내정치에 개입하지 않은 군부, 국민들의 높은 교육 수준, 그리고 강한 시민사회와 같은 다양한 요인을 제시하곤 한다.

물론 튀니지에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이슬람 세력을 대표하는 엔나흐다(Ennahda)가 혁명 직후 제 1당으로 급부상하면서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세속 세력과 이슬람 세력 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실제로 2013년 세속 세력을 이끄는 벨아이드(Chokri Belaid)와 브라흐미(Mohammed Brahmi)가 암살되면서 2013년 8월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지지자들을 상대로 발생한 라바아 학살(Rabaa massacre)과 비슷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튀니지의 강력한 조직인 노동총연맹(Tunisian General Labour Union)을 비롯한 시민사회 조직이 앞장서 이슬람 세력과 대화와 합의를 이끌어내며 내전의 위기를 극복하였다.


사실상 벤 알리 정권 유지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주변국과 국제사회는 재빨리 노선을 변경하고 튀니지 민주화에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약속했다. 주변국과 국제사회는 부르기바와 벤 알리 시대에 활약했던 유력 정치인 에쎕시(Beji Caid Essebsi)가 이끄는 세속주의 니다 투니스(Nidaa Tounis)당과 이슬람주의 엔나흐다당 간 대화와 합의의 정치를 돕고, 다양한 경로로 국가건설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했다.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튀니지의 빠른 안정화였다. 특히 유럽 국가들은 테러의 위협과 난민 유입이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하는 상황에서 튀니지의 행보를 주요한 변수로 여겼다.


민주주의 전환을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올해, 한 사건을 계기로 튀니지의 민주주의가 붕괴의 위험에 처했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2019년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무소속 출신이자 헌법을 가르치는 교수였던 사이드(Kais Saied)가 7월 25일 갑작스럽게 의회를 중단하고 총리를 해임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시에 사용 가능한 헌법 80조항을 근거로 내린 조치인데, 현재 이 결정이 적법한 조치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가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 지도자들은 사이드 대통령의 비상사태 발동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지적하며 조속히 의회를 정상화 해야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우려와 달리 튀니지의 많은 시민들은 사이드의 결정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 시민들의 지지 이면에는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지난 10년간의 깊은 불신과 절망감이 깔려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단순히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나 절차적 민주주의 거부 표현으로 사이드 대통령의 위험한 행보에 찬성한 것은 아니다.


튀니지인들이 보여준 7월 사건 지지 결정의 행간에는 국내 정치 엘리트와 주변국이 주도한 민주주의와 시민들이 원하고 요구해온 민주주의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1년과 2013년 아랍바로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튀니지 국민 압도적 다수가 사회정의 실현을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이자 우선순위로 꼽았다. 필자와의 인터뷰에 응했던 한 청년 실업자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정치적 권리 뿐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애쓰는 시스템이어야 하고 이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튀니지를 지배하는 정치시스템은 말뿐인 가짜 민주주의이다.

비록 민주주의절차들과 정치적 자유가 현재 심화되고 있는 실업문제, 빈부격차, 지역간 불균형을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이들 현안을 진정성 있게 논의하고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는 도구로써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두 민주주의의 간극은 점차 더 벌어질지도 모른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항한 민중운동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관한 물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적어도 튀니지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튀니지 시민들은 “민주주의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물음보다는, “어떤 민주주의가 작동해야 하는가?"라는 규범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을 비롯하여 메나지역 정치와 경제에 깊숙하게 관여해왔던 몇몇 국제사회 행위자는 2011년 아랍봉기가 일어난 직후 민중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않았던 자신들의 정책적 실수를 인정하면서, 앞으로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빈곤계층을 먼저 돌보는 방식에 바탕을 둔 역내 민주주의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메나지역의 안정적인 발전과 튀니지 시민들이 원하는 민주주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깨달았다고 해도 그 깨달음을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0 0

Tel. 02-3274-4800 / 010 4668 4810
Addr. 주소 ㅣ 04107 서울특별시 마포구 백범로 35 (신수동) 서강대학교 정하상관 903호 |  

E-mail. euromena@sogang.ac.kr

COPYRIGHT 서강대학교 유로메나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