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람(Kalam) 7호 프랑스 첫 모스크, 파리 한복판에 있는 이유는? (박단)

관리자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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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칼람(Kalam) 7호. 2021년 8월 16일 월요일  

(칼람은 아랍어로 말을 뜻합니다.)


프랑스 첫 모스크, 파리 한복판에 있는 이유는?


박단 유로메나연구소 소장

중동산업협력포럼 -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파리 세느강 좌안 중심부에 위치한 팡테옹(Panthéon)과 국립자연사박물관(Musée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옆에 ‘파리 대모스크’(La Grande Mosqée de Paris)라고 불리는 커다란 이슬람사원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프랑스 전국에는 약 2,000여 개의 이슬람사원이, 파리에는 약 20여 개의 이슬람사원이 있는데, 파리 5구에 위치한 이 ‘대모스크’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슬람사원이기도 하다. 이슬람혐오가 기승을 부리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땅인 뤼테스(Lutèce, 루테시아) 구역”에 이렇게 큰 이슬람사원이 어떻게 들어설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파리 대모스크’ 설립이 적극 추진된 1920년대 초는 ‘엄격한 정교분리’를 규정한 ‘1905년 법’이 통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데다, 법 통과 주도 세력인 급진공화파가 여전히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던 시기이기에 더욱 커다란 의문을 자아낸다. 



‘파리 대모스크’ 설립과 관련해서 가장 치열했던 쟁점은 ‘1905년 법’ 제2조 위배 여부였다. 이슬람사원 건축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종교에 재정지원할 수 없다’는 해당 조항을 위배하였는지가 사원 설립 계획 당시부터 뜨거운 논점이었다.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약 400만 명에 이르는 프랑스 거주 무슬림이 이용할 이슬람사원과 예배소(Salle de prière)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임에도 ‘1905년 법’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이를 방치할 수밖에 없고, 이를 대신해 외국 무슬림정부가 재정지원을 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는 이슬람 급진주의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를 의식한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의 총재 마린 르펜 (Marine Le Pen)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 내 이슬람사원 거의 대부분(quasi-intégralement)이 외국으로부터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편 바 있다. 이에 대해 24시간 뉴스채널인 ‘프랑스엥포(France Info)’가 사실의 진위 여부를 검증 보도하였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 내 이슬람사원의 재정 80%는 신자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고, 단지 약 10~30%만 외국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지원금은 모스크 신축비용 또는 일부 운영비로 사용되었는데, 알제리는 1982년부터 ‘파리 대모스크’를 재정 지원하였고, 모로코는 에브리(Evry), 망트라졸리(Mantes-la-Jolie), 셍테티엔느 (Saint-Etienne),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이슬람사원을, 사우디아라비아는 파리 지역 내 8개 이슬람사원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2020년 12월에도 몽펠리에(Montpellier)의 가장 커다란 이슬람사원을 모로코 정부가 매입하려 해서 커다란 논란이 있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몽펠리에 시정부가 적극 나선 사실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이렇게 첨예하게 논란이 되는 문제인데,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초에 어떻게   파리 한복판에 이슬람대사원이 건축될 수 있었을까? 당시 집권 세력은 ‘1905년 법’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었을까? 아니 그보다 왜 당시 프랑스 정부는 파리 중심가에 이슬람대사원을 건축하려 하였을까? 이슬람사원 건축을 주도한 정부 및 의회 다수파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위하여 죽은 무슬림 병사들을 추모”하고자 이슬람사원을 건축한다고 주장하였다. 프랑스의 국가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이들은 1922년 모스크 기공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914년 프랑스에 끔찍한 대재앙이 닥쳤을 때, 당신들은 위험에 처해있는 고국의 부름에 아프리카 무슬림들이 어떻게 반응하였는지 목격하였습니다. 충성과 헌신을 보여준 ‘아프리카 형제들’에게 무어라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 상당수가 전장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문명을 수호하고 프랑스를 위하여 죽은 무슬림 병사들을 기념하고자 영광스러운 팡테옹 옆에 이슬람대사원이 곧 건설될 것입니다. 

‘파리 대모스크’는 프랑스를 선전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작품입니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적도, 서부 아프리카, 시리아 등지에서 매년 프랑스에 오는 수많은 무슬림들이 귀국하여 프랑스가 자신들의 종교와 전통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것을 이웃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 정치인들의 찬사 속에 기공식을 마친 ‘파리 대모스크’는 ‘1905년 법’의 엄격한 적용을 일부 완화시킨 1907년 법 적용 대상이 되기 위해 기도공간뿐만 아니라 도서관, 회의실, 카페-레스토랑, 터키식 목욕탕, 골동품 상점, 건강진료소를 포함한 복합시설 (complex)로 설계되었고, 일부 시설은 파리 시민 모두에게 개방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종교단체가 문화단체 형태로 존속할 때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1901년 법’과 ‘1907년 법’을 이용하였다. ‘파리 대모스크’는 단순한 이슬람사원이 아니라 ‘무슬림연구소’를 포함한 문화복합시설로 지어져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결사(l’association culturelle)‘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파리 대모스크’는 단순 기도공간이라기보다는 학습의 장소였고, 문화시설이었기에, 그곳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1905년 법’의 예외 규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파리 대모스크’ 건축 이유로 프랑스인들이 전쟁 중 희생된 무슬림의 공헌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프랑스는 1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움직임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당시 프랑스를 포함한 연합국과 독일 주도의 동맹국은 메나(MENA) 지역의 무슬림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독일은 전 세계 무슬림의 상징적 수장 역할을 하는 오스만 제국의 칼리파를 이용하여 지하드를 선동하고자 오스만 튀르크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영국은 오스만 지배하에 있던 아랍인을 이용하고자 메카의 샤리프 후세인을 회유하였다. 독일뿐 아니라 영국과도 물 밑에서 경쟁하고 있던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제국의 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식민지 무슬림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는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무슬림을 둘러싼 급변하는 외부 정세가 파리에 이슬람대사원을 세운 또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모스크 건축이 적잖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 사원 건축 허가는 주민의 생존권과 재산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는 대구 북구의 모스크 건립 반대자들의 주장을 과연 보편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이슬람혐오 분위기가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더 거세다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도 절대불변일 것 같은 ‘1905년 법’을 유연하게 적용함으로써 이슬람사원 신축의 장애물을 없애려 노력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헌법에서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다문화사회에 근접한 지금, 이슬람도 우리가  존중해야 할 또 하나의 신앙이고, 무슬림도 우리와 함께 공존해야 할 또 한명의 이웃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톨릭교회의 맏딸’ 프랑스의 수도 파리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대모스크’를 보면서 공존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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